한동안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잠시 작업을 멈춘 채 지냈다.
무언가를 비워둔 채로, 혹은 덧붙이지 못한 채로.
다시 만나 작업 이야기를 꺼냈을 때, 우리는 이미 프레임 안에 있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떤 것은 끝내 들리지 않았고, 어떤 것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빈자리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남겨진 것이었고,
덧자리는 그것을 메우기보다 잠시 머무는 방식에 가까웠다.
우리는 그 어긋난 자리를 고치지 않은 채, 흔들리는 상태로 남겨두었다.
우리는 ‘자리’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한다.
자리는 고정되어 있는가, 아니면 이동하며 만들어지는가.
이 질문은 『제자리가 있다는 것』을 읽는 과정에서 생겨났다.
‘자리’는 하나의 위치로 묶이지 않는다.
계속해서 이동하고 겹쳐지며, 때로는 비워진 채 남아 있는 과정에 가깝다.
그 흔들림 속에서 각자의 자리는 다시 만들어진다.
어떤 자리는 비워진다.
어떤 자리는 설명되지 않은 채 남는다.
어떤 자리는 다른 감각 위에 덧붙여지며 드러난다.
이은우에게 ‘빈자리’는 공백이 아니다.
비워둔 상태로 남겨진 장면은 시간과 공간의 흐름을 드러내는 장치에 가깝다.
처음의 빈 상태에서 요소가 하나씩 놓이고, 대상이 자리 잡으며, 색이 더해진다.
이후 비워두는 자리가 다시 형성된다.
이 비워둠은 결핍보다 연결을 유도한다.
여백은 장면과 장면 사이의 시간과 공간의 흐름을 만든다.
이요에게 ‘덧자리’는 고정된 위치가 아니다.
이미 존재하는 감각 위에 다른 감각이 겹쳐지며 발생하는 상태에 가깝다.
그 사이에서 감각이 어긋나고, 충돌하며, 미세한 틈을 드러낸다.
중심이 아닌 경계 주변을 맴도는 무형의 것들을 몸으로 느낀다.
그 반응과 흔적을 따라가며 덧자리를 만들어간다.
서로 다른 방향에서 출발하지만, 이 질문으로 다시 이어진다.
우리는 무엇을 느끼고 있으며, 무엇을 느끼지 못하는가.
그 감각은 어디에서 시작되고, 어디에서 비워지며, 어디에 덧붙여지는가.
*클레드 마랭, 『제자리가 있다는 것』, 황은주 옮김, 에디투스, 2025
글. 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