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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 실험 070
김샨탈
< 마르지 않을 마음 >
2026.05.29 - 06.10
13:00 -19:00

마르지 않을 시간
김명희(큐레이터)

샨탈을 처음 만났을 때, 그가 AI와 대체 가능성에 대해 말했던 일이 기억에 남아 있다. 그 말은 AI라는 기술 자체에 대한
관심이라기보다, 무엇이든 빠르게 만들어지고 교체되는 시대에 무엇이 한 사람의 것으로 남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처럼
들렸다. 그때의 샨탈은 손에 잡히는 물질보다 문장과 리서치를 통해 세계를 더듬어가는 사람에 가까웠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 그가 도자를 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에게는 조금 뜻밖의 선택처럼 느껴졌다. 왜 도자였을까.
《마르지 않을 마음》은 이 질문을 따라, 샨탈이 도자에 머물게 된 시간을 살피는 전시다.

그 시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도자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아야 한다. 이미지의 진실성을 곧바로 믿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작가는 손과 시간이 실제로 개입해야만 결과에 도달할 수 있는 재료를 선택한다. 흙은 곧바로 형태를
내어주지 않는다. 물의 양, 마르는 시간, 손의 압력에 따라 세워지기도 하고 무너지기도 한다. 이 과정은 빠르게 건너뛸
수 없다. 샨탈에게 도자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의 이탈이기보다, 이전부터 품어온 질문을 손의 개입과 기다림이 필요한
재료 안에서 다시 이어가는 방식에 가깝다.

도자를 만드는 일은 작가의 의지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미리 떠올린 형상을 흙 위에 그대로 옮기는 일도 아니다.
흙은 그 자체의 습도와 무게, 마르는 속도를 갖고 있고, 작가는 그 조건 안에서만 다음 형태로 나아갈 수 있다. 너무
이른 손길은 형태를 무너뜨리고, 너무 늦은 손길은 다시 붙을 가능성을 잃게 한다. 그러므로 이 작업에서 만들기는
재료를 완전히 다스리는 일이 아니라, 재료가 허락하는 순간을 알아차리는 일에 가깝다. 샨탈의 도자는 그렇게 통제의
결과라기보다, 물질과 시간을 함께 통과한 결과로 남는다.

이 과정에서 시간은 관념이 아니라 물질의 상태로 드러난다. 흙을 만지는 동안의 시간은 손의 압력과 기다림의 간격
속에 쌓이고, 도자는 그 시간을 통과한 형태로 관객 앞에 놓인다. 샨탈의 도자는 지나간 시간을 직접 설명하지 않지만,
그 시간이 없었다면 존재할 수 없다. 그것은 보이는 형태로 놓여 있으면서도 보이는 것만으로는 다 말해지지 않는
시간을 함께 지닌다.

도자의 시간은 물을 통과한다. 물은 흙이 형태를 얻도록 하지만, 그 형태가 남기 위해서는 물이 빠져나가는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샨탈의 작업에서 물은 단순한 재료나 자연의 요소에 그치지 않고, 시간과 관계를 생각하게 하는 조건이
된다. 무엇인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어쩌면 그 대상과 시간을 보내는 일이다. 오래 바라보고, 쉽게 마르지 않도록 곁에
머무는 일. 그런 점에서 물은 이 전시에서 사랑의 다른 이름이 된다.

이번 전시는 산과 목욕탕이라는 두 장소를 지나간다. 이 두 곳은 모두 샨탈이 지나온 시간 속에서 서로 다른 의미로
자리 잡은 곳들이다. 산은 감당하기 어려운 시간을 버티기 위해 마음속에 반복해서 그려낸 장소였고, 목욕탕은 몸을
씻고 다시 돌보는 반복 속에서 발견한 공간이었다. 산은 인간보다 긴 시간을, 목욕탕은 몸 가까이에서 반복되는 시간을
떠올리게 한다.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오른쪽 공간의 민트색 타일 위에 놓인 〈Love Vase〉 시리즈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낮은
위치에 놓인 도자들은 관객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아래로 이끌며, ‘사랑’이라는 주제를 흙으로 빚어진 구체적인 형태로
마주하게 한다. 제목 속 Vase에 Base를 겹쳐 읽으면, 〈Love Vase〉는 사랑을 담아두는 그릇이라기보다 사랑이 놓일 수
있는 바탕에 가까워진다.

반복되는 하트의 형태는 사랑을 가장 쉽게 알아보게 하는 기호다. 그러나 샨탈이 이 단순한 형태를 선택한 것은
사랑을 가볍게 말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작가는 확신을 잃기 쉬운 시간 속에서도 붙들어볼 만한 방향으로 사랑을
선택한다. 그렇기에 이곳에 놓인 하트 모양의 물병은 크고 작은 마음, 실수와 망가짐까지 포함하는 사랑의 여러
상태를 담아내기 위한 가장 단순한 형식이 된다.

〈Love Vase〉 반대편에는 〈인간-산-물〉 시리즈가 놓인다. 이 작업은 샨탈의 책 『인간-산』에서 출발한다. 『인간-산』에서
산은 한 인간이 자신을 내려놓고 다시 마주하는 장소로 등장하며, 이후 인간보다 긴 시간을 지닌 존재로 확장된다.
기생충, 빅풋, 걷는 나무, 민들레처럼 서로 다른 존재들도 그 세계 안에 머문다. 〈인간-산-물〉에서 책 속의 존재들은
도자로 옮겨진다. 문장 속에 머물던 존재들은 흙의 몸을 얻고, 책 속의 이야기는 읽히는 텍스트에서 바라보는 사물로
옮겨온다. 전시장에 놓인 이 존재들은 더 이상 이야기 속에만 머물지 않고, 관객과 같은 공간 안에서 각자의 몸과
표면을 가진 대상으로 마주 서게 된다.

다른 한편에서 샨탈은 산에 등장하는 존재들이 아니라, 산 자체를 도자의 형태로 다룬다. 멀리서 보면 산은 하나의 큰
덩어리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수많은 생명과 물질이 기대고 얽혀 만들어진 장소다. 원판형 도자는 이러한
산의 상태를 하나의 그릇처럼 펼쳐놓는다. 그 표면에는 산이 품고 있었을 말들이 새겨져 있지만, 글은 처음부터 쉽게
읽히지 않는다. 검은 먹을 가는 행위를 거쳐서야 말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이 작업에서 산은 한눈에 파악되는
풍경이 아니라, 보이지 않던 관계들이 천천히 드러나는 대상으로 놓인다. 믿음 역시 단단한 확신보다, 쉽게 흩어질 수
있는 것들을 계속해서 다시 붙드는 일에 가까워진다.

그런 믿음의 방식은 사랑과도 맞닿아 있다. 물에서 시작한 전시는 마음으로 돌아온다. 샨탈의 도자는 단단한 사물로
놓이지만, 한때 물을 머금었던 시간을 안에 지니고 있다. 흙을 만진 시간과 기다림은 완성된 형태 안에 조용히 남아
있다. 이 전시에서 말하는 마음은 계속 젖어 있는 상태가 아니라, 쉽게 방치하지 않기 위해 다시 돌아가는 태도에
가깝다. 몸을 씻고 돌보는 일이 대단한 행위가 아니어도 하루를 이어가게 하듯, 사랑 또한 거창한 감정보다 어떤
대상에게 시간을 쓰는 일에 가까워진다. 그래서 《마르지 않을 마음》은 사랑이 쉽게 마르지 않도록 시간을 쓰는 일,
지난하게 느껴지는 시간마저 다시 믿어보는일 붙드는 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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