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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ntitled >
박경진
2025. 12. 10 - 12. 16


찾아 오신 분께

추운 날씨에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박경진 작가의 개인전《untitled》에서 여러 글을 남긴강다원입니다. 이 편지가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 그리고 여러분이 서 계시는 이곳, 노고산동의 공간 파도에 전시된 작품을 안내하는 글이 되기를 바랍니다.
전시장에 방문해 주신 분 중에서는 경진 작가를 이미 알고 계셨던 분들도 있을 테고, 처음 작품을 실견한 분도 있겠습니다. 혹은
SNS 로 작가의 회화를 접해, ‘사생’이라는 키워드를 어렴풋이 기억하실 수 있겠지요. 어떤 분이 찾아오셨든, 혼자만의 사생에서
출발하여 여럿이 만든 이 과정의 끄트머리에서 여러분을 기다렸습니다.

올 초부터 작가는 전주 ‘팔복예술공장’에서 레지던시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전에도 답사를 통해 사생을 진행해 온 작가는,
전주로의 이동 이후로도 작은 아크릴 팔레트와 종이를 들고 산을 찾곤 했습니다. 레지던시를 시작하고 몇 번의 단체전에 참여하면서,
작가는 태어나고 자란 강원도나 수도권을 넘어, 충청도와 전라도 일대를 사생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2025 년도의 사생 기록을 다루지만, 그 결과물만이 중요한 건 아닙니다. 사생은 왠지 ‘사색’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해, 고독하게 숲을 누비고 그림을 남기는 혼자만의 시간을 간직한 듯 보이는데요. 경진 작가는 사생에서 시작해 전시로
이어지는 기나긴 호흡을 느리게 보여주기로 했습니다. 지금부터 남길 이야기는 이 공간 파도의 벽과 바닥에 놓인 사물들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설명입니다. 또 작가가 설계한 느린 숨을 여러분과 나눌 수 있는 도구이기도 하고요.

먼저 ‘공유지도’를 설명하려 합니다. 눈치채신 분도 있겠지만, ‘지도’는 작가의 지난 개인전 제목에도 등장한 단어입니다. 그에게
지도는 실제 장소를 축소해서 기호화한 사물이 아닌, 사생일지와 현장에서 보고 느낀 주관적 심상이 결합된 것입니다. 이번 전시에서
지도는 전시 장소-지점에서 전시-목적을 실천하는 여정의 은유이기도 합니다. 내가 선택한 목적지와 지점으로 맞춰진 오늘날의
지도가아닌, 12 월10 일에서16 일까지만공개되는제한된지도라볼수있습니다.이전시와연관된몇몇사람을제하고,전시장의
문은 단 일곱 날만 열려 있습니다. 가끔 전시를 비일상적인 사건, 목표, 혹은 구체화되는 꿈으로 생각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만큼
전시는 특별한 행사이자 다음 프로젝트의 약속이기도 하고요.

그러나 전시라는 지도 그리기에 동원되니,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untitled》가 오랫동안 고대하던 목표가 아니라, 바다 깊이
있던 생물들을 뜰채로 건져 올리는 행위 같다고. 그러므로 뜰채가 사라지더라도 여전히 생물들은 물속을 유영하고 있겠지요.
공유지도는우리에게 익숙한 기호화된 평면이아닙니다. ‘지도를공유하는 것’, 혹은 ‘공유하는 방식으로만들어진지도’처럼 작가의
시선에서 출발해, 그 길을 따라가지만, 과정에서 맺히는 여러 시점을 떠안을 수 있는 너른 지도가 될 수 있습니다. 사적인 행위였던
작가의 사생이 어떻게 공유되고 각각의 지도로 펼쳐질 수 있는지. 덧붙여 말씀드리려 합니다. 이 전시 공간이 하나의 펼쳐진
지도라면, 그 지점들에 대한 각주일 수도 있겠습니다.


1.
공간 파도의 유리문을 열고 들어서면 사생현장에서 모은 기록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작가가 사생을 떠나기 위한 아침의 채비, 장면이
남긴 자취, 장소에서 떠올린 조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빼곡히 들어있는 것은 분주한 하루입니다. 겨울날 바싹 마른 나뭇잎이 덮고
있던 눈의 결, 축축한 여름날이 드리워진 종이, 빛이 나무 사이를 침투하는 어느 날의 사진 기록, 그 전체의 풍경에서 떨어져 나온
듯한 어느 껍질과 잎사귀. 그리고 그것에 겹친 작가의 말들로 느리게 흘러가는 계절을 감지하게 합니다. 사진 위에 덮인 글은, 사진이
말하지 않는 어떤 순간의 기억을 포갭니다. 유리병과 액자에 담긴 숲의 조각들은 풍화되고 밟힐 운명이었던 사소한 물체들을
안전하게 보호합니다. 작가는 전시에서 그들을 가지런히 배열하며, 잔재들에 이름과 의미를 붙여 줍니다.

2.
전시 공간의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메아리를 듣기 위해〉(2025)는 전라북도 김제시와 완주군을 가로지르는 호남의
산입니다. 작가는각각 4 월과9 월, 두 번모악산 사생을다녀왔습니다. 그리고 작업실로돌아와가로 131, 세로194cm 의거대한
종이에 모악산의 바위 그리고 그 기운을 옮겨냈습니다.
작가는 자연의 변질을 재현하기 위해 사생합니다. 숲속의 나뭇가지와 솔잎, 덤불이 겹쳐 있는 장면을 선으로 옮겨 냅니다. 빛과
명암으로 이루어진 사실적 묘사 대신, 선과 색이 종이 위에 옮겨지며 특정 장소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 구현되는 것입니다.*
〈메아리를 듣기 위해〉는 올해 9 월에 찾은 모악산의 바위를 그린 그림입니다. 거친 바위의 결을 따라 채워진 초록색의 이끼는
이불처럼 덮여 있고, 아직 가을이 채 찾아오지 않은 푸른 숲속에 자리합니다. 사생 회화에서 초록과 회색은 서로 엉겨있고, 갈색의
나무는 그 틈을 비집고 있습니다. 멀리서 보면 바위가 나무 같기도 하고, 나무가 바위 같기도 하죠. 여름에서 가을로의 변화는
차가워지는 바람의 온도로 느껴집니다. 꼭 눈에 보이는 가을의 색으로 표현되지 않더라도, 천천히 불어오는 선선한 공기의 흐름, 그
공기가 닿는 나뭇잎의 흔들림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환절기의 모악산은 그렇게 여름에서 가을 사이, 머금었던 물기를 증발시키는
거대한 바위와 잎 위로 떠오릅니다.

3.
단상을 올라와 왼쪽 벽입니다. 저는 경진 작가와 4 월부터 10 월까지 총 일곱 번의 편지를 주고받았습니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그
편지는 계절을 가로질러 겨울까지 닿는 길이었습니다. 4 월의 첫 편지에는아직 사무적인 문체가 남아 있습니다. 날씨가 무더워지고,
또 선선해지면서 말투도 부드럽게 바뀌었지만요.
이 편지는 목적지 없이 풀만 치워진 산길 같습니다. 한 달에 한 번 편지를 주고받다 보니 생긴 희미한 길목 같은 것일까요. 처음에
경진 작가는 주로 레지던시 생활과 전시 준비를 위한 사생 기록을 편지에 실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서울에 묶인 상태에서 쓸 수밖에
없는 기록들을 남기기로 했었죠. 하지만 편지가 오갈수록 지역의 구분은 사라져, 편지라는 이름을 빌려 할 수 있는 글만이 남게
되었습니다.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열네 통의 편지는 지나고 보니 우리의 나날을 착실히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경진 작가는
하나하나의 글 안에 매달 다녀온 장소들을 충실히 기록해 두었습니다. 한 번의 사생 이후 편지를 남길 때마다 작가는 깊은 마음을
함께 실어 보내는 듯했습니다. 마지막에 닿을수록 작가나 기획자라는 역할이 무화되었고, 공개의 사실조차 잠시 잊은 채, 오로지
소통 수단은 편지밖에 없는 사람들처럼 많은 이야기를 늘어놓았습니다.

* 박경진, ⌜현장사생을 통한 사의성에 대한 연구⌟, 2024, 국내석사학위논문 성신여자대학교 일반대학원 동양화과, 2024, pp.20-22

4.
사생이라는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왔던 작가는 이번에 그의 하루를 촬영해 줄 사람들을 산으로 초대했습니다. 영상의 스크립트는
작가가 사생을 위해 숲을 방문했을 때 느꼈던 감정을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어린 땅’은 숲과 친밀히 지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합니다. 사생을 그리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마치 메아리처럼 어린 날이 되돌아와 산속을 더 깊이 들어가게 되는 작가의
오늘은 메아리처럼 영상 속에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이 작업은 ‘많은 이름들이 이루는 이야기’라는 전시의 부제를 망라합니다. 거대한 숲에서 작가의 눈은 항상 그릴 것을 향해 있었지만,
이번에는 그런 작가를 지켜보는 새로운 눈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사생은 현장에서 그렸던 드로잉과 수집한 사물들, 작업실로
돌아와 다시 기억하는 회화라는 멈춰 있는 사물로 보였다면, 지금 보시는 이 영상에는 9 월의 산 깊은 곳에서 움직이는 작가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혼자만의 시간이 남긴 사생은 전시라는 공유 공간에 가닿습니다. 《untitled》에서는 그림에 저장된 사생의 결과가 또 다른 글감이
되고, 다음 과정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제가 경진 작가에게 썼던 편지와 비평이 전시 공간에 저장되고, 그 이후 페인트로 덮이거나
치워지겠지만 공간의 벽에 오랫동안 저장될 수 있는 것처럼, 사라지지 않는 이름들이 이 공간을 떠다니고 있습니다.
메아리는 나의 입에서 터진 목소리가 산에 부딪혀 다시 돌아오는 것입니다. 2025 년의 마지막 달에 일곱 날 동안 열리는 이곳에서,
전시라는 사건을 준비하기 위해 분주히 오갔던 수많은 메아리를 기억합니다. 이 시간이 지나면 전시는 종료되고 오늘의 이 풍경은
기록으로만 추억하게 됩니다. 그러나 작가의 하루들이 안전히 여기에 도착했듯, 언젠가 이 흔적들이 다른 메아리와 답장이 되어
내일을 기다리게 되겠지요.

2025 년 12 월
강다원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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