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제목 ‘칩이 다 떨어졌을 때’(When the Chips are Down)는 카지노에서 사용하는 칩이 모두 소진되어 더 이상 베팅을 이어갈 수 없는 상황에서 유래한 말로, 결정적인 선택이 요구되는 순간을 의미한다. 종교학자 조너선 스미스는 이 표현을 인용하며 종교를 다른 문화 현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독특한 현상으로 위치시켜 온 기존의 종교학을 비판한다. 그에게 종교는 경전과 의례, 교리처럼 한정적인 자료를 통해 세계 전체를 해석하고자 하는 집요하고 강박적인 인간의 활동이자 노동으로, 자의식적인 재구성을 필요로 하는 현상이다. 이러한 사유는 칩이 다 떨어졌을 때, 즉 종교학이 엘리아데식 접근을 반복하며 세계의 다면성과 복잡성을 포착하지 못하지 못한 상황에 이르렀을 때 스미스가 우리에게 내보인 것이다.
김연진, 듀킴, 오세린은 《칩이 다 떨어졌을 때》에서 신에게 제물을 바치며 제의를 수행하는 제단을 배치함으로써 전시장을 의례적 공간으로 치환시킨다. 제단과 의례적 공간 곳곳에 놓이는 자신들의 작업과 각자의 작업에서 파생된 요소들이 뒤엉켜 탄생한 공동 작업은 일종의 성물(聖物)이 된다. 하지만 일반적인 성(聖)과 속(俗)의 구별 아래 이들의 성물은 병이나 재난의 원인으로 여겨지는 속, 혹은 완전성으로부터의 분열에 가깝다. 금기를 가시화하고 위반하며 조르주 바타유가 말한 불안, 공포, 욕망, 쾌락과 같은 감각의 상태인 신성을 발생시킨다. 이제 기대를 품고 칩을 올리던 게임 테이블을 연상시키는 붉은 제단 위에서 성물은 정상적이라고 여겨지는 세계와 그를 향한 열망을 향해 의문을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