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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 실험 059
< 틀이 없는 살, 타지 않는 뼈 >
함영훈, 신유진
2025.3.29 - 4.10

 『저편에서』
암묵적으로 영원을 약속한 자리에 세워진 것들을 바라본다. 단단한 표피를 두른 육중한 구조물이, 저편에서 말 없는 자들을 등지고 서 있다.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는 이 풍경도 어느덧 잦아들어 바닥 아래의 살갗을 드러낸다. < 틀이 없는 살, 타지 않는 뼈 >는 오늘날의 세계가 필연적으로 도시와 자연이 결합된 경관임을 전제하에, 물질세계를 유지하는 항상성의 원리 속에서 마주한 것을 조각의 언어로 사유한다.
활동 가능한 무대(stage)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꾸준히 생성되는 물질이 범람하지 않는 까닭은 사라짐이 그 대척에서 계속되기 때문이다. 물질의 사라짐은 서랍장을 정리하듯 신속하게 물리적 공간을 확보하는 개념이 아니라, 분해라는 생·화학적 작용 속에서 천천히 이행되는 목적 없는 긴 여정과 더 닮아 있다. 순환은 이렇듯 생성과 소멸의 고유한 속도와 힘 사이의 견고한 균형이며, 동시대의 인간과 비인간, 유기물과 산업 물질이 한데 얽혀 형성된 커다란 궤적인 셈이다. 모든 것은 태어남과 동시에 소멸의 인력을 따라 걷지만, 인간의 시스템은 이를 거부한다. 선으로 구획한 공간 위에 영원으로 쌓아 올린 덩어리들이 선뜻 자리를 내어주지 않고 땅을 움켜쥔다. 그렇게 늙을 줄 모르는 점령은 주변부의 것들을 조금씩 밀어내기 시작한다. 신유진과 함영훈은 < 틀이 없는 살, 타지 않는 뼈 >를 통해 살아있던 것들의 부산물이자 잔해인 것들로 자연(Nature)이 아닌, 모든 물질의 운명이 군집으로 교차된 자연(Essence)의 의미를 고찰한다.
 전시장에는 자연물과 인공물로 이루어진 각자의 작업이, 들여다보기를 위한 길을 방해하는 지형지물로서 등장한다. 이는 통상적인 관람 체계-작품과 관객이 일정한 거리를 보장받은 상태에서 일대일로 대면하는-가 아니라, 공간 내부의 요소들이 정적인 움직임에 제약을 걸어 보다 혼재된 상태의 보기를 제안한다. 낙엽과 흙더미 사이를 밟으며 전시장을 횡단하고, 콘크리트 구조물 아래를 통과하는 등, 관람자가 시각에 기반을 두고 임시적인 환경과 호흡하며 스스로 입체적인 감각을 형성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이러한 체험은 앞선 전제와 함께 이분법적으로 약속된 질서를 거부하고 그 이면을 찾아 나아가는 두 작가의 태도를 반영한다.  
먼저 신유진의 작업은 자연과 도시를 구분 짓는 시선으로부터 빠져나와, 기존의 경계를 허무는 시도를 함축한다. 야생의 범위를 재단하여 관리하는 인간의 기틀은, 그 중심지로부터 멀어질수록 점점 축소되는 관리 시스템에 의해 되려 그 구분을 모호하게 만든다. 인공적으로 조성된 대규모의 자연시설이 주는 스펙터클은 반대로 내러티브적 지형인 인근의 야산을 진부한 것으로 전락시킨다. 이러한 경험은 자연이라는-도시로부터 분리되어 있다는 환영적 의미로서-추상적인 관념에 의해 더욱이 눈앞의 진실을 간과하게 한다. 이와 같은 사실 속에서 신유진은 야산에 둘러싸인 저수지라는 특수한 장소에 흙과 낙엽, 톱밥 등의 유기물을 눈과 섞어 빚은 경계석을 설치하고, 통제할 수 없는 요소-빛, 바람, 거주자 등의-로 인해 조각이 변화하는 과정을 두 차례 촬영하여 기록했다. 공간을 가로지르는 지형< 두엄을 쌓으며 >를 사이에 두는 < 야산에서-겨울 >, < 야산에서-봄 >은 본래 보행로나 도로, 산책로 등을 구분하는 일련의 지표인 경계석을 부숙성(분해 가능한 성질)의 질료로 압축시킴으로써 시간에 의해 서서히 무너져 내리는 순간의 현장을 사진 이미지로 보여준다. 앞선 두 사진의 대비가 현장을 관찰하는 전경의 시선이라면, 5개의 또 다른 경계석이 무너져 내린 결과로 형성된 일시적인 지형< 두엄을 쌓으며 >는 물질의 방식으로 해체를 현실에 위치시킨다. 우측 단상에서부터 내려오는 토양은 기존 전시장의 구조적 경계를 허물며 공간을 횡단한다. 반듯했던 경계들은 풍화로 허물어져 구획적 지표에서 바닥(토양)으로 흩어진다. 규칙적인 배열의 블록이 누구나 오갈 수 있는 경계 없는 땅이 되어가는 동안 그가 찾는 것은 새로운 주인이 아닌 모두의 발걸음이다.    
신유진의 작업이 이미 오랜 소멸의 기로에 들어선 부산물에 의해 발생한다면, 함영훈의 작업은 반대로 소멸하지 못한 잔해를 우연히 목격함으로써 시작된다. 그는 포장된 아스팔트로 인해 사체가 땅으로 흡수되지 못하고 나뒹구는 일상의 장면을 계기로 도시의 구조에 대한 의문을 가졌다. 매일 밤 사체들은 산업 폐기물과 함께 수거되어 여러 잔재와 함께 소각된다. 이러한 현상은 생명의 몸체를 일전에 지닌 생동이 무색하게, 쓰임에 종속된 공산품 정도로 퇴색시킨다. 그러나 도시는 이런 방식을 고수함으로써 보다 매끈한 외피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그는 생명체와 도시 물질 사이의 역설적 관계를 콘크리트 구조물과 유기적 물성을 대비한 조각으로 드러낸다. 마치 구조물에 의해 죽은 짐승의 조직을 연상시키는 조각 과 는 흉측한 형상으로 변질되는 죽음의 실체를 은폐하지 않고 적나라하게 공간에 내놓는다. 이는 도시라는 무결(無缺) 속에서 상실된 사라짐의 모습을 다시금 물질로 촉발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또한 사고로 죽은 새의 외곽선을 딴 작업 은 실제 수집한 사체 이미지를 콜라주 방식으로 보여줌으로써 일상의 잔혹함을 다시 보게 한다. 소각되기 전 마지막으로 촬영된 여러 동물의 파편은 압축되어 결국 다시 재단된 틀 안에서 비상하게 된다. 앞선 목격처럼 최신과 청결의 상태를 유지하는 도시는 소멸의 과정을 비약적으로 단축하는 방식을 통해 그 항상성을 유지한다. 함영훈은 생을 촉발하지 못하는 죽음과 똑바로 마주함으로써, 영속성을 위한 현실의 허상을 포착한다. 결과적으로 그의 작업은 도시의 모순적 구조와 대면하게 함으로써 콘크리트의 역설로 인한 현실의 나약함을 자각하도록 돕는 것이다.
현시대의 틀에 갇힌 것들, 불타는 것들을 뒤집은 제목 < 틀이 없는 살, 타지 않는 뼈 >는 기존의 체계와 현상을 주목받지 못하는 잔여로 이야기한다. 전시는 지극히 인공적인 무대인 도시를 자연과 다름없는 필연적 환경으로 받아들인 동시대의 태도로부터 점점 감춰지는 사라짐의 의미를 지금, 여기로 떠올린다. 

글. 함영훈 


참여: 신유진, 함영훈
포스터: 박현지
촬영: 스튜디오 유물 

🍃오프닝 리셉션: 29일 15:00-19:00
간단한 음료와 다과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실험 연계 프로그램: 작가와의 대화 <  누락된 것들 > 4/5일 식목일 15:00-16:00
모더레이터: 이유민
작가: 신유진, 함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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