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과 달 >
< Selene's Scoop >
이시마, 장미
leesima, Jang Mi
@sima.summ, @mi_jang_mi
달은 무게를 덜어내고 채워내기를 반복하며 어김없이 돌아온다. 떠나보내기 위해서 불러오는 영혼, 안에서 밖으로, 그리고 다시 안으로 귀결되는 흐름.
이렇게 원형을 그리는 관계들을 이 전시에 담았다. 이시마와 장미는 전래되어 온 이야기, 기법, 매체를 통해 잊힌 이야기와 존재를 소환해 온 작가다.
두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규범 바깥에서 이루어지는 관계를 탐구해 표현했다. ‘영’과 ‘달’은 이들이 말하고자 하는 관계가 있는 세계다.
영(靈)은 무언가에 깃들거나 어딘가를 떠도는 비물질적인 대상이다. 우리는 영을 의식하지 않고 있다가 어느 순간 크기로, 온도로, 무게로 느낀다. 명확히 설명할 수 없는 감각으로 존재함을 알 수 있는 것이 영이다. 달은 우리가 사는 공간에서 항상 함께하고 있는 물체이지만, 어둠이 내려앉아야 얼굴을 보게 된다.
이러한 ‘영’과 ‘달’은 음과 양이 함께 있어야 조화와 균형이 이루어진다는 학설인 음양설(陰陽說)에서 ‘음’의 세계에 놓인다. 이시마와 장미가 주제로 다루는 ‘관계’는 이곳을 떠돈다.
이시마는 영혼결혼식을 모티프로 한 단채널 비디오 < 쇄파 >를 선보인다. 근대 이후의 영혼결혼식은 이승을 떠도는 불온한 망자를 저승에 정상적으로 안착시킴으로써 그를
조상신으로 모시고자 하는 데 목적이 있다. 여기서 이성 간의 결혼이라는 결합의 형태는 완전성을 획득하는 수단으로서 인식된다.* < 쇄파 >에서 무당 ‘윤우’가 주도한 한 부부의 딸
‘도원’의 영혼결혼식 역시 이러한 인식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이에 따라 도원은 남성 혼령과 맺어진다. 윤우는 “해파리는 땅에서 살 수 없고, 포도는 바다에서 살 수 없다”라며 있어야 할
자리와 경계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윤우는 자신의 일이 그 경계를 건너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자신과 닮은 도원을 ‘바다 포도’에 빗대어 표현한다. 이처럼 윤우는 도원을 자리에서 이탈한 모순적인 존재로 여겼음에도 불구하고, 관습에 따라 의식을 거행한다. 윤우는 이 과정에서 여러 모순적 상황과 내적 갈등을 겪는데, 이를 통해 작가는 이성의 영역 바깥에서 성사되는 초월적인 관계들에도 현실사회의 자본과 제도, 특히 가부장제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드러내고, 선택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장미는 손톱을 소재로 한 회화, 비디오,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이때 손톱은 여성 간의 친밀하고 섹슈얼한 관계를 암시하는 상징인 동시에,
이러한 관계를 맺는 이들이 자신을 드러내거나 상대를 알아보는 표식으로 나타난다. < 짧은 손톱 >은 작가가 일상에서 관찰한 손들을 그려낸 연작이다.
그림에서 손톱을 짧게 깎은 손들은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있다. 이 손들은 서로를 끌어안아 신체적인 교감을 나누기도 하고, 팔씨름으로 (성적인) 완력을 겨루기도 하며,
때로는 마작을 함께하는 일시적인 교류의 현장에 놓이기도 한다. 작가는 일상에서 이러한 손들, 그리고 손들이 맺는 관계를 은밀한 시선으로 좇고,
이들이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을 오가며 형성하는 다양한 관계망을 그려냈다. 한편 < 그리고 그 다음날도 >는 손톱에 대한 작가의 자전적인 고백이
담긴 단채널 비디오다. 작가는 손톱을 깎는 일과 자신이 누군가에게 느끼는 성애를 연결 지어 설명하고,
연인과 서로의 손톱을 다듬어 주는 장면으로 이 행위를 경유해 맺어지는 친밀한 관계를 드러낸다.
사적 관계에 대한 성찰로서 일상에서 손들을 관찰한 작가는 관객의 손톱을 잘라주는 퍼포먼스 < 손톱에서 손끝으로 >를 통해 이 특수한 행위를 거치는 관계의 대상을
확장해 본다. 타인이 지켜보는 앞에서 말없이 낯선 이의 손톱을 다듬는 이 퍼포먼스는 공적 영역에서 허용되는 친밀함의 경계에 관한 질문을 던지고, 금기시된 관계의 형태를 환기한다.
영의 세계와 달의 세계의 핵심은 순환과 반복에 있다. 이시마의 작업에서 영의 세계는 윤회와 업보, 모순을 품은 존재가 사는 다중의미의 세계다.
장미의 작업에서 달의 세계는 이지러지다 차오르기를 반복하고 보이는 동시에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 사는 궤도와도 같다.
물이 담긴 수조에 오목한 형태의 오브제가 띄워진 이시마의 < 빙하 >는 전시 공간의 중앙에 놓여 두 세계를 이어낸다.
불교에서 물은 재탄생, 천도와 같이 새로운 세계로 가기 전 업과 번뇌를 씻어내기 위해 쓰인다. ** < 빙하 >를 통해 우리는 물을 거쳐 두 세계를 오가고, 그 과정에서 씻겨나간
무언가들이 부유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오목한 오브제의 버튼을 누르면 해파리와 포도의 세계를 건너던 윤우의 굿 일부가 울리고,
해결되지 않는 번뇌와 모순의 목소리는 < 그리고 그 다음날도 >에서 흘러나오는, 서로의 손에 날붙이를 댄 채로 속살거리는 연인의 소리와 공명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품은 채, 천천히 유영한다.
* 망자의 집안에서 요청한 영혼결혼은 위령을 통해 망자를 조상 신령으로 좌정하고 천도하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둔다.
영혼결혼식의 대상이 된 망자들로는 객사한 이들 뿐만 아니라 베트남전쟁에서의 전사자, 재난에서의 피해자 등 국가적인 죽음의 당사자들도 포함되었다. 최준, 「한국샤머니즘에서의 영혼결혼」, 『한국문화연구』 17, 2009; 박선영, 「베트남전쟁 시기 “죽음의 국유화”와 영혼결혼식」, 『한민족문화연구』 84, 2023 등의 문헌 참고.
** 최혜경, 「불교신앙에 나타난 물의 상징성」, 『남도민속연구』 제33집, pp.264-265 참고.
글. 박혜정
2025. 3.7 - 3. 21
13:00 - 19:00
(휴무일 없음)
초대일
2025. 3. 7
17:00 "손톱에서 손끝으로" 퍼포먼스
(퍼포먼스 사전 신청으로 진행되며, 안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신청 가능합니다. 인원에 따라 조기 마감될 수 있음을 알립니다.)
18:00 개막식
공간 파도
마포구 고산 7길 23 1층
Space Pado
1F, 23, Gosan 7-gil, Mapo-gu, Seoul
주최 공간파도
기획 및 글 박혜정
디자인 김경연
사진 하다원
*공간 파도는 낮은 턱이 있는 건물 1층에 위치해 있어 휠체어 접근이 어려우나, 방문 전 연락 주시면 입장을 보조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