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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 실험 020

프로젝트 간(정두리, 구지언,  조은후, 김현지)
<간 姦>
2021년 9월 24일 ~ 10월 1일

카프카의 <변신> 속 그레고르는 어느 날 아침 갑자기 흉물스러운 벌레가 된 모습으로 잠에서 깬다. 스스로 자신의 모습에 적응하기도 전에, 그는 인간의 외관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자신이 앞으로 하지 못할 일들에 대해 걱정한다. 방문을 열기 직전에는 “다시 인간의 테두리 안에 받아들여졌다”라고 잠시 안도하지만, 금세 신선한 음식에 메스꺼움을 느끼고 대를 물려온 방 안의 가구가 사라지길 자신도 모르게 소원하며 사람으로서의 과거를 쉽게 소거한다.
2021년 현재에도 원치 않는 변신을 필연적으로 수반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레고르와 같이 자신이 속한 관계 속에서 성실한 직원, 믿음직한 가족으로 자신을 정의해 보지만 그러므로 스스로 재현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오랫동안 주류 사회가 정립한 이미저리에 갇혀있었고 자신이 누군지 발언하기 위해―그조차도 진실하지 못할지라도―다른 사람으로 가장해야만 했다. 주체로 재현될 수 없는 타자, 그들의 이름은 ‘여성’이다. (중략)


네 명의 작가들의 결합도 그러하다. 여성이 남성에 비해 작품을 통해 보다 더 자전적인 성향을 드러낸다는 조앤 스나이더(Joan Snyder, 1940-)의 발언처럼 구지언, 김현지, 정두리, 조은후는 개인의 경험에서부터 출발하여 작품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히 풀어낸다. 그리고 그것들이 모여 일시적으로 ‘여성들’의 이야기를 재현한다. 여자 여(女)자가 모여 간음할 간(姦) 자를 만들어내듯이 우리가 모인 자리에는 누군가가 보기에는 더럽고 간악한 것이 남아있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이것이 유효함은 적어도 타인에 의해 곡해되지 않은, 그래서 부정될 수 없는 진실한 나의 서사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레고르는 결국 가족의 외면 속에 죽음을 맞이했다. 아마도 이는 그가 인간으로 돌아가지 못하자 결국 같은 사회에서 규정한 벌레의 습성에 자신을 침잠시키는 오류를 범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의 컵은 이미 금이 가고, 이가 빠지고, 깨져버렸기에 비극적 결말로의 경로는 간신히 선회했다.
돌이킬 수 없도록 더 많은 컵을 깨야 한다는 네 작가의 외침은 이윽고 또 다른 컵에 공명을 일으키리라 믿는다.

글 최하림

-전시서문 중